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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회의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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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8-12 00:33 조회1,0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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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미국, 캐나다 등 서양의 다민족 국가들은 이민자들의 외로움에 대한 문제 인식과 함께 대책 마련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울, 불안, 스트레스, 분노 등의 심리장애와 더불어 실직, 직업적 능력의 저하, 가정의 불화 또는 깨어진 가정으로 인한 양육 부담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이민자 사회에서 두드러지면서 이 나라 정부에 재정적인 부담을 안기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외롭고 지친 사람이 직업적, 사회적으로 충분한 역할을 발휘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민자들의 외로움이 최근에야 서양 주류사회의 고민이 되었지만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오랫동안 해묵은 관심사이자 가장 난해한 주제였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많은 분들의 결론이 체념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그동안 심리학계에 누적된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이민자들의 특징은 가족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유독 높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감당못할 외로움과 고립감을 호소하는 것이 서양인들 눈에는 아이러니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가족의 지지와 보호는 원래 우울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완충 작용을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민자들은 사회적 관계에 치중하며 소모하는 시간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외로움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가족 안에서의 정서적 지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응집력과 의존도가 커질수록 가족 내에서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그만큼 좌절과 상처도 더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사람은 늘 집단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를 근원적으로 타고 났습니다. 한결같이 사랑받고 인정받으면서 의미있는 대인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보다 나은 모습을 갖추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동기를 불어넣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이 불편하거나 스트레스일 뿐이라는 인식이 깊이 쌓이게 되면 늘 좌절감에 젖어 있는 상태에 빠질 수도 있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의욕이 줄어들면서, 이는 결국 우울증, 불안장애, 극심한 외로움, 스트레스, 분노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리학자 와이스는 사람들이 유익한 대인관계를 통해 얻는 것들을 여섯 가지의 범주로 묶어서 설명했습니다. 첫째, 친밀감과 따뜻함을 누리게 하는 ‘애착 attachment’입니다. 둘째, 개인의 관심과 활동이 사회 전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한 방향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 즉 소속감, 유대감, 공감대를 통한 ‘사회적 통합 social integration’입니다. 셋째,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안녕감을 누릴 수 있는 ‘보살핌에 대한 기회 opportunity for nurturance’입니다. 넷째, 개인의 유능감, 가치, 정체성, 나아가서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의 확인 reassurance of worth’입니다. 다섯째, 필요할 때 언제든 서로 곁에 있어주고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 즉 ‘신뢰로운 협력 관계 reliable alliance’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조언과 길잡이 guidance’를 서로에게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외에 추가로 유익한 자극을 주고 받음으로써 삶에 대한 흥미와 의미를 더욱 키우고, 만남을 통해 자신을 더 발견하고 타인과 조화로워지는 법을 배우는 성숙과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 주목하는 심리학자들도 많습니다.

 관계의 형태마다 얻는 것들이 다릅니다. 즉, 하나의 관계에서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족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경우에는 그만큼 놓치는 것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애착 (attachment)과 보살핌 (nurturance)이 단단한 가족애를 누리고 있다면 일단 크나큰 행운입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의 확인, 협력 및 조언의 기능도 가족이 일정 부분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갈증을 해결해주기에는 사람이 근원적으로 갖고 나온 갈증의 범위와 깊이가 한없이 넓고 깊습니다. 이민자로서의 삶은 근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사회적 통합 (social integration)에 대한 욕구는 피부색과 문화가 다르고 영어가 짧은 동양인에게는 언감생심이라는 느낌입니다. 유대감이 왠지 부족하고 조금은 덜 환영받는 그 느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겠습니다.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회사나 단체에 소속된 소수의 동양인들은 유대감의 한계를 더욱 뼈저리게 느낍니다. 한국의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애국가가 경기장에 울릴 때 관중석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 팔구는 해외동포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한마음으로 울고 환희하는 유대감이 얼마나 그리웠겠습니까. 남의 나라에 정착해서는 내가 속한 소그룹의 웰빙을 확보하는 것이 늘 시급한 과제일 뿐 이 나라 전체 공동체와 한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일체감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조금 더 환영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만 영원한 이방인에 머무르는 것은 운명이지요.

 개인의 능력, 존재감,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단단한 정체성을 누리는 것 또한 이민 일 세대에게는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향수인 경우가 더 흔합니다. 이는 이민 일 세대의 가장 큰 애환이며 자녀 세대와의 갈등의 한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민 이 세대의 성장통 중에 하나는 영어 못하는 부모가 서양식 매너 마저 익숙치 않아서 남들 부모만 못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일처리 하나도 아직 어린 자기가 나서야 가능해지는 상황을 성장기 내내 겪는 것도 자식 세대에게는 꽤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한국말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가 됩니다. 다행히 특유의 근면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한국인 부모의 지극한 지원 속에 자녀들이 능력에서 꽤 앞서가면서 자긍심과 정체감을 훌륭하게 키워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런 가능성 덕분에 이민이 줄을 잇고 있는 셈이지요. 부모의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필요할 때 곁을 지켜주고, 적절한 조언을 통해 안전한 길로 안내하고, 때로는 협력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까운 인맥을 갖고자 하는 욕구도 역시 대인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동포 사회는 유독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 문화가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를 대변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익한 자극을 주고 받으면서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친구 또는 동료를 갖는 것이 교민사회는 유난히 어렵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게 됩니다.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속마음을 주거니 받거니 함으로써 자기 정체감을 느끼려면 우선적으로 자신이 가진 전문성에 걸맞는 직업을 갖고 있을 때가 수월합니다. 동포사회의 경우는 자신의 전문성을 내려놓고 먹고 살기에 우선 필요한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자기 성장과는 좀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직장 동료 관계를 통한 유익한 자극이나 삶의 활기를 누리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잃고 사는 게 많을 때 가랑비에 옷 젖듯 외로움과 공허함 그리고 불안감이 차곡차곡 마음에 쌓입니다. 허한 마음을 채우려고 어느 집단에 속해 대의명분과 응집력을 향한 열정을 태워보기도 하고, 마음 맞는 사람이다 싶으면 속을 다 털어보이고 나눠보기도 하지만 마음에 충만함이 생기기보다는 역효과를 경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반대로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들 마음 맞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어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서로를 더욱 외롭게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핍이 심할수록 기대치나 소망은 커지게 마련이고 그만큼 작은 좌절에도 크게 동요하는 법입니다. 사람들 간의 만남은 그 형태에 따라 ‘딱 그 만큼의 목적’들이 있는 법인데 행여 작은 만남에서 나도 모르게 너무 큰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작은 목적의 작은 만남을 통해 너무 많이 쌓인 결핍들을 단번에 어루만지고 싶은 욕심은 아닌지요. 우리가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결핍과 외로움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람과의 만남을 통한 소망은 가장 현실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슬기로운 대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형태의 만남이건 사람 간의 만남은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걸지도 또한 체념하지도 않는 게 낫겠습니다.

호주한국일보 김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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