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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뇌, 여자의 뇌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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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14 10:29 조회1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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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과 관련된 가장 흥미로운 질문 중의 하나는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어떻게 다를까’ 이다.

◆남녀의 뇌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분법적으로 구별되는 전형적인 여자의 뇌, 전형적인 남자의 뇌 따위는 없다. 어떤 사람의 두개골에서 뇌를 꺼내서 뇌만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맞혀보라고 하면 맞힐 수가 없다. 거의 유일하게 비교적 큰 차이가 관찰되는 것이 뇌 전체의 부피이다. 남성의 뇌가 대체로 여성의 뇌보다 더 크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남녀 두 집단에서 겹치는 부분이 48% 이상이고, 집단 내부의 편차가 크다. 그래서 당신 앞의 남성(또는 여성)의 뇌가 당신의 뇌보다 큰지 작은지를 성별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예컨대 성인 남성인 어떤 사람이 자기 앞에 있는 어떤 성인 여성의 뇌 크기와 자신의 뇌 크기를 비교한다면, 이 남성의 뇌가 그 여성의 뇌보다 더 클 확률은 84%다. 또한 눈앞에 있는 여성의 뇌가 남성의 뇌보다 더 클 확률은 16%다.

더욱이 뇌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변해간다. 쥐를 활용한 한 연구에서는 갑자기 음식을 14시간 동안 주지 않는다든가, 갑자기 낯선 쥐가 있는 쥐장에 옮겨넣는다든가, 갑자기 30분간 움직이지 못하게 해두는 등 예측하기 힘든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3주간 주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는 암컷보다 수컷이 등쪽 해마에서 CB1 수용체라는 단백질을 더 많이 발현한다. 하지만 3주간 스트레스를 받고 나자 이 차이가 역전됐다. 경험에 따라 성별 차이가 뒤집힌 셈이다.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과 뇌

읽고 김이 샜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의 뇌, 여자의 뇌라고 했을 때 궁금해하는 것은 뇌의 크기라든가, 이름조차 낯선 어떤 단백질의 발현 정도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는 '뇌가 크니까 남성이 머리가 더 놓다는 의미냐, 남녀가 어학 능력이나 수학 능력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냐'와 같은 능력이나, '여성이 더 감정적이고 남성이 더 이성적이라는 것이냐'와 같은 성격을 궁금해한다. 남녀 차이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돼 있는 게 아닐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위 항목들은, 남녀 간에 차이가 없거나 경미해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밝혀졌다. 1990년부터 2007년 사이에 이뤄진 242개의 연구 데이터(무려 120만명의 아동과 성인)를 분석한 메타 연구에 따르면 남녀의 수학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다른 메타 연구들도 수학 능력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 공격성, 리더십, 인성, 도덕적 추론 등 많은 부분에서 남녀 간에 차이가 없거나 작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인과 멕시코인을 대상으로 이뤄진 흥미로운 연구에 따르면, 남녀 양쪽이 하루 평균 1만6000단어 정도를 말하며 수다스러움이라는 측면에서도 남녀 차이가 없다고 한다.

위 특징들은 생물학적인 성별의 차이보다는 고정관념과 문화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서 흔히 남성이 공간 능력이 더 탁월하다고 알려졌지만, 비슷한 부계사회와 모계사회를 비교했을 때, 이 차이는 모계사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흔히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징을 남성 호르몬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징을 여성 호르몬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성 호르몬의 분비조차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아 변한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을 임의로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쪽 그룹에는 "A는 물리 개념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A가 남성일 확률과 여성일 확률은 각각 얼마일까"라고 물어서 고정관념을 떠올리게 한 뒤에 인지 검사를 실시했다. 다른 한 그룹에는 "A는 물리 개념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A가 북미 사람일 확률과 유럽인일 확률은 각각 얼마일까"처럼 성별 고정관념과 무관한 내용을 떠올리게 한 뒤에 인지 검사를 실시했다. 연구자들은 성별 고정관념을 떠올린 남성들의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치가 그렇지 않았던 남성들보다 60%나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 호르몬도 환경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어떤 차이에 주목할 것인가

놀라운 것은, 남녀의 뇌(뇌과학이 없던 과거에는 남녀의 타고난 능력과 성격 차이)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데 반해서, 남녀의 신체 차이는 좀처럼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녀의 신체 차이는 남녀의 성격·능력 차이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여성의 건강은 사회 구성원 절반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생명의학 연구에서는 수컷만을 사용했으며, 생식과 무관한 연구인데도 암컷을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수컷의 신체가 표준이고, 암컷의 신체는 수컷의 변이 정도로 인식됐던 셈이다. 그러다보니 남성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던 약이 여성이 복용하면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생겼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미국에서 이뤄지는 생명의료 연구를 가장 큰 비율과 규모로 지원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에서 자기네 지원을 받는 전 임상 단계의 동물 실험과 세포 실험에서 양성 차이를 고려하는 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은 언제일까. 1990년대? 2000년대? 놀랍게도 2016년이다. 2014년 무렵부터 결정되고 2016년부터 시행됐다.

과거에는 남녀의 차이를 연구하는 방법조차 남성 기준으로 정해진 측면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성격과 능력 또는 신체라는 측면에서 남녀를 비교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남성과 여성을 비슷한 수로 모아서 양쪽 집단을 비교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여성의 경우에는 월경주기를 고려해야 한다. 남녀의 차이를 성 호르몬으로 설명하려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음에도, 바로 그 호르몬이 변하는 월경주기가 고려된 것은 비교적 최근부터라고 한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수는 있지만, 남녀가 집단 차원에서 성격과 능력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은, 남녀의 건강에 비해서 시급한 주제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월경주기와 문화를 고려하지 않는 등 제대로 된 연구 방법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태로 남녀의 성격·능력 차이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지난번 글에서 다루었던 신경교세포와 일견 비슷한 측면이 있다. 뇌 속에는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가 비슷한 숫자로 있지만, 다수의 일반인들은 신경교세포의 존재를 알지 못하며, 뇌과학자들조차 신경교세포보다 신경세포에 연구를 집중했다. 지식 자체만큼이나 어떤 부분은 왜 연구되지 않았고, 어떤 부분은 왜 연구되었으며, 연구되었다면 어떻게 연구되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한 셈이다.

◆어떤 지식이 누구에 의해 생산되고 인용되는가

우리나라 민담을 모아 풀어낸 신동흔 교수의 책 '삶을 일깨우는 옛 이야기의 힘'을 보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화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대목이 나온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제보자 중 여성의 비율은 80% 이상이다. 저자는 이 사실로부터 하루아침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내의 짝이 된 여성들의 애환과 떠나고픈 충동을 읽어낸다.

이야기 자체만이 아닌, 화자가 누구인가로부터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과학에도 간혹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연구자의 대부분이 서구의, 부유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의 교육받은 사람들(속칭 WEIRD라고 부른다)이기에 연구 대상도 종종 이들이었으며, 연구 주제의 선정도 WEIRD의 맥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래서야 연구 주제와 연구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와 사회 환경의 차이를 반영하지도, 지구 전체의 인구를 대표하지도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과학 지식이 생산되는 현장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하는 사회에서도 화자에 따라 과학 지식의 (때로는 가짜 과학의) 다른 내용을 이야기한다. 미국 공화당의 다수는 오랫동안 기후변화가 거짓이라고 믿었으며, 진화가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까지의 연구를 폭넓게 살펴본 다음에 결론을 내린다기보다는, 결론이 정해져 있고 자기 결론을 뒷받침할 (가짜) 연구만 찾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어떤 과학 지식이 생산되고 인용되는지'에는 긴장과 갈등이 따른다.

이처럼 긴장과 갈등이 동반되는 과학 지식의 하나가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른가'이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 남자의 건강과 여자의 건강에 대한 지식은 그 지식을 누가 생산하는가, 그 지식이 어떻게 활용되는가와 무관하기 어렵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9/02/2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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